진짜로 글로벌 경기침체 오나… 몇 가지 징조들

원자잿값 ↓… 채권시장 돈 몰려 

미 고용시장 저임금 일자리 감소

미국인 5명 중 3명은 “이미 침체”


 


8월 5일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무려 4451p 폭락하며 사상 최대 낙폭 기록을 경신했다. 이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증시도 모두 파랗게 질렸다. 이어서 개장한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33.99p(-2.60%) 내린 3만8703.27에 마감했다.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한 이번 ‘블랙먼데이’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다. 물론 이 우려는 금세 ‘과한’ 것으로 판명 났고 이튿날 각종 증시 지수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징조와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세계 원자잿값 하락과 경기침체의 상관관계 = 최근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세가 심상찮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원자재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인데 요즘 주요 원자재 가격이 지속해서 떨어지는 건 경기침체 우려가 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CNBC 방송은 금속원자재 상품을 담고 있는 인베스코 DB 베이스 메탈 펀드 가격이 지난 7월에 7% 이상 하락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원유 선물 가격도 7월 5일부터 8월 5일까지 한달 사이에 14% 하락했다. ‘블랙 먼데이’가 큰 출렁임 끝에 반등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가라앉는 모양새지만 원자재 가격 추이로 보면 글로벌 경제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울프 리서치의 로브 긴스버그 상무는 지난주 고객보고서에서 “원자재 측면에서 보면 전체 항목이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금을 제외하면 긍정적인 전망을 찾기 어려운데, 이런 원자재 가격의 광범위한 하락은 경제 상황에 대한 또 다른 경고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리 가격 하락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리는 전기자동차와 반도체, 재생에너지 등 성장 산업에 꼭 투입되는 금속으로, 올해 초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구리 선물은 지난 5월 20일 파운드당 5.19달러로 최고가를 찍었다가 이후 21.4% 하락해 12일 오전 4.08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12%가량 하락했다.

 

TD 증권의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 바트 멜렉은 구리 수요를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신호로 평가했다. 그는 “전기차에 많이 들어가는 구리가 슈퍼 사이클을 맞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런 얘기는 매우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면서 “이제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 2위 대국인 중국 경제의 약세가 특히 구리와 석유 수요를 제한하고 있다. 멜렉은 “중국 정부가 경제를 살릴 확실한 재정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면서 “에너지와 비금속, 구리 등 원자재 수요는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공포가 사라지지 않으면서 글로벌 투자자금도 주식시장에서 벗어나 채권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EPFR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지금까지 미국 국채 및 회사채 시장에 660억 달러 이상이 순유입됐다. 7월에만 574억 달러가 유입됐는데, 이는 1월 이후 월간 유입액으로는 가장 큰 금액이다. 8월에도 89억 달러가 몰렸다. 높은 등급 회사채 펀드는 10주 연속 자금 순유입을 기록했다. 4년 만에 가장 긴 유입 행진이다.

 

PGIM 채권의 로버트 팁 글로벌 채권팀장은 “경기침체와 같은 하방 시나리오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산을 보호할 최선의 상품은 미국 국채”라고 말했다.

 

●저임금 일자리 감소는 침체 예고편?  = 미국 고용시장에서는 저임금 근로자 일자리가 확연히 줄고 있다. 소매점 판매원이나 창고직원, 가정부 등을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던 고용주들이 요즘에는 남아도는 인력을 해고하고 있다. 이 역시 경기침체의 예고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요즘 미국 고용시장에서 시간제 노동자를 구하기가 쉬워졌다면서 이들 인력을 구하는 업체들이 속속 구인 공고를 철회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청소업체인 ABM 인더스트리스에는 “현재 인력 채용 중이 아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청소원을 구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던 이 업체가 이런 표지판을 붙인 것은 아주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지난 몇 달간 저임금 근로자가 일자리를 찾기는 아주 쉬웠다. 기술 기업부터 은행에 이르기까지 대기업들은 채용을 줄여왔지만, 판매원이나 식당 종업원, 가정부 등은 늘 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상황이 바뀌고 있다.

 

제조업체 존 디어는 지난 11월 이후 시간제 근로자의 약 15%인 2100명을 감축했다. 스피릿 항공은 승무원 모집을 중단하고 일부에게는 자발적인 무급 휴직을 권했다. 보육업체 브라이트 호라이즌스 패밀리 솔루션스는 직원 채용이 쉬워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방위산업체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해군 함정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쉽게 구한다고 밝혔다. 건설업체도 일용직 근로자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식당 종업원도 채용이 쉬워졌다. 외식업체 체인 BJ's 레스토랑의 채용 담당자들은 얼마 전까지 200개 이상의 식당에서 일할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채용 박람회를 여는 등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여전히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지만, 기존 직원의 추천을 받아 충당하거나 채용 공고만 내도 구직자들이 몰려온다.

 

물론 트럭 운전사를 포함해서 일부 직종은 여전히 구인난이 심하다. 이에 대해 쓰레기 운반업체 리퍼블릭 서비스의 존 밴더 아크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30년은 운전자가 계속 부족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인 5명 중 3명 “미국 경제 이미 침체” = 실제로 미국인 5명 중 3명은 미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CNBC 방송은 전자결제업체 어펌이 지난 6월 20∼24일 미국인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미국 경제가 현재 침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배경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68%)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돈 문제로 불평을 많이 한다는 응답도 50%로 뒤를 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일반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작년 3월부터 미국이 침체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여겼다. 작년 3월은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5% 언저리에서 높게 유지되고 있던 시기였다.

 

또한 미국인들은 현 침체 상황이 내년 7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낼 경우 기술적으로 경기침체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은 1분기 1.4%, 2분기 2.8%(속보치)를 나타낸 점을 고려하면 2분기까지 경제 상황은 기술적 침체 진입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하지만 다수 일반 미국인은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 탓에 체감상 이미 미국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와 실제 미국 경제 상황 간의 단절 현상을 ‘바이브세션(vibecession)’이란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바이브세션이란 ‘분위기(vibe)’와 ‘침체(recession)’의 합성어로, 경제 상황에 관한 국민의 비관적인 인식 때문에 실제 경제 상황과는 별개로 사회 분위기가 상징적인 침체 상태에 들어갔음을 가리키는 용어다.

 

JP모건의 조이스 장 글로벌 리서치 부문 대표도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재 ‘바이브세션(vibecession)’에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지난 몇 년간 재산 증식이 주택소유자와 소득 상위층에 집중된 반면 인구 중 3분의 1은 이 같은 재산 증식에서 소외됐다”며 “단절이 발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세테라 파이낸셜그룹의 진 골드만 최고투자책임자는 “저소득층은 (오르는 렌트비 등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모든 게 좋아 보이지만 속 안을 들여다보면 가진 이들과 가지지 못한 이들 간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한국무역신문